다른 방식으로 읽기: 이솔 『이미지란 무엇인가』
이솔 · 민음사 · 2023년 · 244쪽
1. 저자의 핵심 주장
이미지는 현실을 복제한 가짜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를 경험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방식이다.
- 이미지와 실재는 반드시 대립하지 않는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를 이미지로부터 분리해서 생각하는 오래된 철학적 관념을 재검토해야 한다.
- 이미지를 만드는 상상력은 인간의 자유와 연결된다. 우리는 상상을 통해 현재의 조건과 거리를 두고 다른 삶의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 이미지는 실재를 구성한다. 이미지는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으며, 새로운 관계와 경험이 발생하는 장소가 될 수 있다.
- 이미지의 문제는 결국 타자와의 관계로 이어진다. 같은 취향과 생각을 반복해서 확인하는 이미지 소비는 우리를 고립시킬 수 있지만, 낯선 세계를 보여 주는 이미지는 그 바깥으로 나갈 가능성을 제공한다.
2. 전체 구조
2.1. 주요 논의
들어가기
스마트폰과 온라인 이미지 소비에 대한 불안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 우리는 현실을 잃어버리고 있는가?
1-3부 이미지라는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
이미지가 왜 실재의 복제물로 여겨졌고, 어떤 자유와 가능성을 갖는가?
1부. 이미지에 대한 불안들 28–94쪽
데카르트 · 흄 · 플라톤
인간은 왜 자신이 보는 이미지를 의심하고 그 배후에 진짜 현실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가?
2부. 이미지는 자유다 95–160쪽
사르트르 · 상상력 · 온라인의 시선
이미지를 상상하는 능력은 어떻게 현재의 현실을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 내는가?
3부. 이미지는 실재다 161–223쪽
들뢰즈 · 영화와 스크린 · 타자
이미지 자체가 현실이라면, 이미지는 어떻게 새로운 경험을 만들고 타인과 만나게 하는가?
6장과 9장, 결말
온라인 이미지 소비의 현실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데도 왜 익숙한 것만 반복해서 소비하는가?
2.2 전체 장을 이미지의 범위에 따라 분류
| 장 | 이미지의 철학적 의미 | 이미지의 형태·매체 및 사례 | 주요 논의 | 논의의 성격 |
|---|---|---|---|---|
| 들어가며 | 실재와 이미지의 관계, 내면적 표상에 대한 문제 제기 | 지각·상상·디지털 이미지 | 이미지와 실재를 분리하는 관점에 대한 비판 | 철학적 문제 제기 |
| 1장. 데카르트의 꿈 | 감각적 표상, 상상과 사유 | 감각 경험, 꿈, 상상 | 이미지의 불확실성과 확실한 인식의 가능성 | 인식론 |
| 2장. 흄의 극장 | 인상과 관념을 포함한 지각 경험 | 감각, 기억, 상상 | 경험을 소유하는 고정된 자아에 대한 의심 | 경험론·자아론 |
| 3장. 플라톤의 동굴 | 실재와 구분되는 감각적 외관과 모방물 | 그림자, 모방 이미지, 감각 세계 | 이미지와 참된 실재의 위계 | 존재론·인식론 |
| 4장. 사르트르의 이미지 철학 | 대상을 상상적으로 지향하는 의식의 방식 | 상상 속 대상 | 이미지가 의식 내부의 사물이라는 관점 비판 | 현상학 |
| 5장. 상상이란 무엇인가 | 현실에 없는 가능성을 지향하는 상상적 의식 | 상상, 가상의 상황 | 상상력과 인간의 자유 | 현상학·자유론 |
| 6장. 온라인 세상의 시선들 | 이미지 경험과 타인의 시선 사이의 관계 | 온라인 이미지, 디지털 자기표현 | 이미지와 온라인에서의 실재적 관계 | 현상학의 디지털 적용 |
| 7장. 들뢰즈의 이미지 철학 | 인간 의식에 종속되지 않는 실재, 운동과 변화에 속하는 이미지 | 물질 세계, 운동, 영화 이미지 |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를 재정립 | 존재론 |
| 8장. 스크린에서 일어나는 일 | 새로운 지각과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이미지 | 영화, 스크린 | 기존의 인식 틀을 벗어나는 이미지 경험 | 영화철학·인식론 |
| 9장. 타자를 만날 수 있을까 | 이미지의 정의 자체보다 타자와의 경험 및 관계에 초점 | 온라인 커뮤니티와 디지털 소통 | 집단적 유아론, 타자에 대한 배제 | 사회철학·윤리적 문제 |
| 나가며 | 이미지 소비와 실재적 경험의 관계 | 디지털 콘텐츠, 스마트폰 | 반복적인 이미지 소비와 콘텐츠 피로 | 현대 디지털 문화 비판 |
A. 온라인에 한정되지 않는 이미지 철학: 1·2·3·4·5·7장
감각, 지각, 의식, 상상, 실재를 다루는 장. 온라인 이미지는 이 철학을 적용할 수 있는 대상 중 하나.
B. 영화 등 시각 매체의 이미지: 8장
영화라는 매체를 중심으로 이미지가 어떻게 새로운 경험을 만드는지 다룬다. 영화는 온라인으로도 볼 수 있지만, 온라인 이미지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3장의 동굴 그림자도 물리적 이미지의 사례로 볼 수 있다.
C. 온라인 이미지와 디지털 사회: 6·9장, 나가며
온라인에서 이미지가 유통되고 타인의 시선과 관계가 형성되는 방식, 디지털 공동체의 폐쇄성과 콘텐츠 소비를 다룬다.
3. 철학자별 주장 비교
| 철학자 | 이미지에 대한 관점 | 주체와 경험에 대한 관점 | 핵심 개념 | |
|---|---|---|---|---|
| 1부 | 플라톤 | 감각적 이미지와 참된 실재(이데아)를 구분. 이미지는 진리를 가릴 수 있음 | 감각적 외관을 넘어 이성을 통해 본질을 인식해야 함 | 이데아, 모방, 동굴의 비유 |
| 1부 | 데카르트 | 감각과 이미지는 오류를 일으킬 수 있어 확실한 지식의 근거가 되기 어려움 | 의심할 수 없는 사유하는 자아를 확실한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음 | 합리론, 코기토, 방법적 회의 |
| 1부 | 흄 | 인식은 인상과 관념이라는 지각에서 출발 | 고정된 자아보다 경험·상상력·습관을 통해 형성되는 믿음과 정신의 작용에 주목 | 경험론, 관념 연합, 습관 |
| 2부 | 사르트르 | 이미지는 정신 속 복제물이 아니라 대상을 상상적으로 의식하는 방식 | 상상력은 주어진 현실과 거리를 두고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는 자유를 드러냄 | 지향성, 무화, 자유 |
| 3부 | 베르그손 | 물질 세계 자체를 이미지들의 관계로 이해. 이미지는 주관적 표상에 한정되지 않음 | 인간의 지각은 행동에 필요한 것만 선택하므로, 그 한계를 넘어 실재의 지속을 탐구해야 함 | 이미지, 지속, 직관 |
| 3부 | 들뢰즈 | 이미지는 원본의 복제로 환원되지 않으며 운동하고 변화하는 실재 자체를 구성 | 주체는 경험 속에서 형성되며, 차이와 생성의 과정이 중요함 | 초월론적 경험론, 생성, 운동-이미지, 시간-이미지 |
추가로 알아두면 좋은 철학자들
프리드리히 니체: 현실 뒤에 더욱 참된 세계가 있다는 믿음을 의심해야 한다. 니체는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를 열등하게 여기고 그 배후에 초월적인 참된 세계를 설정하는 철학을 비판했다. 이솔 역시 서문에서 니체의 배후세계 비판을 언급한다.
이마누엘 칸트: 우리는 세계를 인간의 인식 조건을 통해 경험한다. 칸트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현상과 사물이 인식과 독립하여 그 자체로 어떠한가라는 물음을 구분했다. 여기서 현상을 단순한 가짜 이미지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현상은 우리가 실제로 인식하는 경험의 세계라는 점이 중요하다.
3.2. 철학자들이 대립하는 핵심 지점
| 쟁점 | 입장 A | 입장 B |
|---|---|---|
| 이미지와 실재 | 플라톤: 이미지와 참된 실재 사이의 위계를 설정 | 베르그손·들뢰즈: 이미지를 실재와 분리된 열등한 복제로 환원하지 않음 |
| 주체의 존재 | 데카르트: 사유하는 자아를 확실한 출발점으로 삼음 | 흄·들뢰즈: 고정된 자아를 의심하고 주체가 형성되는 과정을 탐구 |
| 이미지의 의미 | 사르트르: 상상하는 의식의 방식 | 베르그손·들뢰즈: 의식과 독립적인 이미지의 실재성을 강조 |
| 경험의 역할 | 흄: 경험과 습관을 통해 믿음이 형성됨 | 들뢰즈: 경험과 주체 자체가 발생하는 조건까지 탐구 |
| 시간의 이해 | 공간화된 시간: 분할하고 측정할 수 있는 균질한 시간 | 베르그손: 분리할 수 없는 질적 변화의 흐름인 지속 |
4. 발췌
들어가며
이 책은 이미지에 관하여 탐구하면서 내면적 자아라는 판타지가 얼마나 견고한 동시에 얼마나 연약한 것인지를 살펴볼 것이다. 그러나 내면성을 비판한다는 것이 곧 주체 없는 실재를 논한다는 것은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실재와 이미지 사이의 균열이다. 세계 그 자체와 우리에게 주어지는 바의 세계 사이의 균열. 최근 활발히 활동하는 사변적 실재론이 보여 주듯 ‘거대한 외부(Grand Dehors)’, 곧 주체에게 상대적이지 않은 세계 그 자체를 논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이미지 배후의 실재라는 낡은 독단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면성의 신화만큼이나 경계해야 하는 것은 일찍이 니체가 지적한 ‘배후세계(Hinterwelt)의 착각’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 이외의 혹은 이상의 실재가 있으리라는 믿음은 정당화된 것이 아니라 그저 선언된 것일 뿐이다.
샤르트르와 들뢰즈 모두 내면성의 신화를 넘어서려 했다. 둘의 공통점은 '전통 철학의 주체'(세계를 인식하고 판단하며 경험하는 중심으로서의 나) 관념을 비판하며 주체를 일종의 과정이자 운동으로 이해된다. 타자와 나는 안과 밖의 구분이 아닌 뒤섞여 있고 어딘가로 향하는 과정 중에 있는 과도기적 형식이다. 그러나 내면성을 비판한다는 것이 곧 주체 없는 실재를 논하려 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실재와 이미지 사이의 균열이다. 내면의 신화만큼이나 경계해야 하는 것은 배후 세계의 착각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 뒤에 인간의 지각이나 관계와 완전히 무관한 '진짜 세계'가 따로 있다 역시 극단적 논리이다.)
내면의 신화와 배후 세계의 착각을 경계하는 가운데 실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실재는 주관과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주관을 경유하여 성립한다. 이때의 실재는 나 혼자 만들어낸 것도 아니고 주관과 완전히 무관한 것도 아니다. 나와 타자들이 경험하고 관계 맺는 가운데 드러나는 세계를 의미한다. 실재는 타자와 더불어 형성된다. 사변적 형태의 개념적 사유가 완전한 지식이라고 여기고, 이미지를 열등한 것이라도 간주하는 선입견이 있다.
1부. 이미지에 대한 불안들
1장. 데카르트의 꿈
핵심 질문: 내가 보는 세계가 진짜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이미지와 이성은 정말 완전히 분리되는 것일까?
⇒ 이미지가 불확실하다는 사실이 이미지를 인식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
데카르트는 우리가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언제든 잘못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꿈속에서도 우리는 세계를 보고 경험하지만, 깨어나면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여기서 믿을 수 있는 것은 감각적 이미지가 아니라 의심하는 나 자신의 사유라는 결론에 도달해. 그런데 데카르트는 이미지를 불신하면서도 상상력을 사유의 한 양태로 인정했어.
‘나는 사유한다’는 데카르트가 온갖 혼란스러운 표상들 사이에서 발견해 낸 최초의 명석 판명한 인식이다. 데카르트는 단 하나의 확실한 인식인 이 코기토 명제에 기초해서 확고부동한 지식의 체계를 건설하고자 한다.이와 같은 시도는 ‘나는 사유한다’가 결코 의심할 수 없는 확실성을 가진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말하자면 모든 이미지들은 늘 거짓일 수 있기에 지식을 추구할 때 원칙적으로 배제되어야 하지만, 코기토로 표현되는 나의 사유는 어떤 의심의 여지도 허용하지 않는 진실성을 담보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미지와 사유는 가장 먼 곳에 위치하는 두 극단으로 간주되고 있다.그런데 그동안 데카르트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않았던 ‘상상’에 주목할 때 문제는 복잡해진다. 이상한 것은 데카르트가 이미지에 대해 불신을 드러내 보이는 동시에 상상에 관해서는 긍정적 태도를 취한다는 사실이다. 상상 능력(facultas imaginandi), 즉 상상력(imaginatio)이란 라틴어 단어가 보여 주는 그대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그렇다면 이미지와 관계하는 상상력 역시 참된 지식을 구하는 과정에서 배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데카르트는 상상력을 사유의 한 양태로 본다.
인식론적 유아론
내가 경험하는 세계 바깥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는가?
나의 의식에 주어진 경험을 넘어서는 실재와 타자에 접근하는 문제
2장. 흄의 극장
핵심 질문: 이미지를 바라보는 고정된 '나'가 정말 존재할까?
데카르트가 모든 것을 의심한 끝에 사유하는 자아를 발견했다면, 흄은 그 자아마저 의심해.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면 생각, 감각, 감정, 기억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지각들이 나타나지만, 그 모든 것을 소유하는 불변의 자아를 직접 발견할 수는 없다는 거야. 흄의 극장 비유는 마음을 하나의 고정된 실체라기보다 계속 바뀌는 지각들의 연속으로 생각하게 해. 그렇게 되면 이미지를 바라보는 주체와 그 주체에게 주어지는 이미지를 구분하는 방식도 흔들리게 돼.
흄은 인간학이 다른 모든 학문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심이라 한다. 그렇다면 만학의 토대가 될 인간학은 어쩐 방식으로 탐구되어야 하는가? 데카르트와 흄의 철학의 근본적 차이는 이 방법에서 드러난다. 흄이 선택한 방법이란 경험, 그리고 경험된 사태에 대한 부단한 관찰이다. 인간 본성의 원리는 오직 경험과 관찰 을 통해 탐구되어야 한다.
데카르트는 맹목적 탐구, 즉 경험론을 비판한다. 하지만 흄은 데카르트의 성찰이 참된 것이 아닌 승인할 수 없는 거짓된 직관과 기만이라 생각한다. 흄의 인간학은 오직 경험에 나타난 바에 기대 인간 본성의 원리들을 그려내려는 시도이며, 여기에 경험에 드러나지 않는 모든 관념(물체적 실체, 자아 등)과 법칙들은 원칙적으로 허위로 간주한다.
데카르트에게 경험이 가상과 오류의 원천으로 간주되었다면 흄에게 경험은 참된 지식을 얻기 위해 의존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으로 이해된다. 그렇기에 흄은 자아라는 관념을 인정할 수 없다. 경험에 주어진 인상들 중에 지속성을 가진 나와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흄에게 확실한 것은 그 유래를 알수 없는 단속적인 지각들, 즉 정신의 극장을 떠도는 인상과 관념뿐이다.
경험을 통해 관찰되지 않는 모든 것을 거부한 끝에 흄의 철학이 다다른 곳은 회의주의의 심연이었다. 흄은 인간들이 서로 다른 지각들의 다발 또는 집합이며 이 지각들은 표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서고 계기[10]하고 흐르며 운동한다. 사유는 시각보다 가변적이다.. 정신은 일종의 극장이다. '나'는 "지각들의 다발 또는 집합"일 뿐이다. '나'는 정신이라는 극장을 떠도는 수많은 지각들의 배후에 있는 실체가 아니다.
흄은 정신에 관한 모든 종류의 임의적 설명을 거부한다. 그의 인간학에서 발견되는 것은 극장에 떠도는 이미지들 뿐이다. 이미지들은 연합되어 다양한 종류의 관념을 형성한다. 연합을 인도하는 것은 지성이 아닌 상상력이다. 상상력은 경험(과거 대상들의 여러가지 결부들에서 나를 가르치는 원리)과 습관(내가 미래에도 동일한 것을 기대하도록 결정하는 또 다른 원리)에 뿌리를 둔 능력으로 규정한다.
흄은 기존 철학이 섣불리 본유적인 것이라 받아들인 관념들의 원천에 상상력이 있음을 폭로한다. 이러한 상상력은 경험과 습관에 의해 인도된다는 점이다. 흄이 정신의 역량으로 제시하는 기억력과 상상력은 바로 이미지들을 불러오고 연합하는 힘의 이름인 것이다. 흄은 지성이 더이상 인간에게 본유적으로 내재하는 능력이 아니라 한다. 인간의 이성은 과거 발생한 사건들에 대한 관찰과 경험에서 발생하는 것이지 그와 다른 원천을 가지지 않는다.
3장. 플라톤의 동굴
핵심 질문: 이미지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진짜 세계를 만날 수 있을까? 이미지의 문제를 이미지의 진위 여부로만 판단하는 태도 자체가 어떤 철학적 전제를 갖는지 생각해 봐.
플라톤의 동굴에서 사람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를 현실이라고 믿어. 철학자는 이 그림자의 세계를 떠나 참된 존재를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이 비유는 오늘날의 디지털 문화에 대한 비판과 닮았어. 화면에서 벗어나 현실을 보라는 요구는 이미지가 가짜이고 그 바깥에 더 진실한 세계가 있다는 구분을 전제하니까. 저자는 이러한 구분이 정당한지 되묻고 있어. 우리가 온라인에서 만나는 관계, 감정, 사건 역시 실제 삶을 구성하고 있는데, 그것을 단지 화면을 통해 경험했다는 이유로 현실보다 열등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근대 철학의 경험론(흄)과 합리론(데카르트)에서 공통으로 이미지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이 발견된다. 전통적인 철학적 개념을 통해 말하자면 '오표상’의 문제. 즉 실재와 이미지의 관계에서 이미지가 대상을 잘못 나타낼 수 있다'라 할 수 있다.
거짓된 표상으로부터 참된 상을 구별하기 위한 방법으로 데카르트와 흄은 표상의 힘과 생생함에 주목했다. 흄은 상상의 관념과 기억의 관념이 힘과 생동성의 측면에서 차이가 나며, 이것 이외에 양자를 구별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다고 말한다. 흄이 강조하는 것은 생생함이라는 이 모호한 특성이 기억과 상상을 구분 짓는 데 결코 적절한 기준이 될 수 없음에도 '생생함 이외에 의존할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다'는 사실이다. 흄이 회의주의적 결론으로 나아간 것은 바로 이때문이다.
그렇다면 올바른 표상과 거짓된 표상을 구별할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가?
가상에 관한 불신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째서인가? 고대의 비유에서부터 이미지에 대한 의심은 여전하고, 설상가상으로 실재와 이미지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불안은 나날이 증대한다. 불안은 타인에 대한 경멸로 손쉽게 뒤바뀐다. 이를테면 “나가서 사람을 좀 만나.”라는 핀잔. 매체 속의 가상적 현실에 빠져 있지 말고 현실로 나가 실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좀 보라는 것만큼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표현이 또 있을까? 일찍이 플라톤은 우리를 현혹시키는 이미지로부터 벗어나 동굴 바깥으로 나가 눈부신 태양을, 곧 무시간적인 본질을 가진 영원의 상인 이데아를 관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동굴 밖으로 나가라’는 잔소리가 오늘날까지 반복되고 있다.
2부. 이미지는 자유다
4장. 사르트르의 이미지 철학
핵심 질문: 이미지는 정신에 저장된 그림일까,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일까? 이미지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이미지가 '어떻게 경험되는가'라는 질문으로
사르트르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보관된 작은 그림처럼 이해하는 관념을 비판했어. 상상한다는 것은 의식 내부의 사물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아니라, 어떤 대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의식하는 행위야. 가령 지금 눈앞에 없는 사람을 상상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복제물을 머릿속에서 꺼내 보는 게 아니야. 현재 부재하는 대상을 상상이라는 방식으로 지향하는 거지. 이미지는 여기서 더 이상 실재를 대신하는 열등한 사물이 아니야. 의식이 세계와 관계 맺는 하나의 고유한 방식이 돼.
사르트르는 최초로 '이미지'를 주제로 한 철학적 탐구를 수행하는 가운데, 플라톤 이래 전통 철학이 무비판적으로 답습해 온 가상으로서의 이미지 관념에 문제를 제기했다. 왜 우리가 대면하는 것은 실재가 아니라 그것의 그림자인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세계와 구분되는 참된 세계가 있다고 여겨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사르트르를 추동한 것은 내면을 벗어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이다. 기존 철학은 의식을 일종의 공간으로 이해했고 그러한 의식 내에 온갖 표상들과 관념들을 집어넣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나'라는 관념이다. 최초의 저작 『자아의 초월성』에서 '나'가 의식 안에 있지 않으며 세계의 다른 사물들과 마찬가지로 의식 밖에 곧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5장. 상상이란 무엇인가
핵심 질문: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떠올리는 능력은 왜 자유인가? 상상력이 현실을 바꾸는 직접적인 힘은 아니더라도, 현실을 바꿀 가능성을 인식하게 만든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야. 지금의 삶과 다른 상태를 상상할 수 있으며, 상상은 현재 주어진 조건을 유일한 가능성으로 여기지 않게 해. 가난이나 질병, 사회적 제약처럼 현실의 조건을 마음대로 변경할 수는 없어. 하지만 그 조건이 없는 삶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지. 이를 통해 자신의 현실을 문제로 인식하고 변화시키려는 동기를 얻을 수 있어. 사르트르에게 이러한 상상은 현실로부터의 단순한 도피가 아니야. 현실에 거리를 두고 그것을 넘어설 가능성을 발견하는 의식의 자유를 드러내는 행위야.
포박되고 구속된 죄수의 모습으로 형상화된 인간에게는 그 어떤 능동성도 활력도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란 그저 동굴의 벽면을 바라보는 일이다. 사르트르는 이렇게 수동적인 태도로 주어지는 것들에 순응하는 인간의 초상에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은 그 자신을 꼼짝할 수 없도록 구속하는 상황에서도 늘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다.
우리는 질병을 앓고 있거나 가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든 가난과 질병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다. 상상은 자기가 놓여 있는 조건과 상황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함으로써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고 변화시킬 가능성을 형성한다. 특정한 자연적·사회적 현실 속에 내던져져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의 타고난 신체적 조건을 변형할 수 없으며 태어날 때부터 속해 있는 계급에서 벗어날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의식만큼은 결코 그와 같은 현실적 조건들에 의해 제한될 수 없다. 자신이 처해 있는 문제 상황을 자각하고 나아가 다른 삶을 상상하고 또 기투함으로써 우리는 언제든 그것을 넘어서고 개선하고자 하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의식은 근본적으로 자유로우며, 상상은 이 자유의 표현과 같은 것이다.
6장. 온라인 세상의 시선들
핵심 질문: 온라인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가,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규정하는가?
온라인은 자신이 원하는 정체성을 구성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이야. 자신을 이미지로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 주며, 타인의 반응을 통해 자기 모습을 다시 인식하게 되지. 이 장은 사르트르의 이미지 철학을 디지털 환경에서의 시선 문제와 연결해 읽을 수 있어. 중요한 것은 이미지를 통해 자유롭게 자신을 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면서 스스로를 제한할 수 있다는 긴장이야.
온라인 이미지는 현실을 보여 주는 수단일 뿐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현실적인 의미와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
155 인스타그램 속 이미지들을 의미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은 사실성이 아니다. 셀카, 인생네컷, 인증샷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실재를 생생하게 재현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다른 타인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 디지털 이미지에서 타성이 발견된다는 점에 주목하자
156 그것이(디지털 이미지) 실재로 거듭나는 것은 그것을 실재로 간주하는 집합적 승인에 의해서이다. (ex- 벌거벗은 임금님 이야기)
156 이 세계(온라인 세계)가 실재가 되는 것은 그것이 나의 자유를 한정 짓기 때문이다. 온라인 세계가 실재적인 것은 고해상도의 이미지들이 있기 때문이 아니고, 그것이 바로 타인이 바라본 세계의 풍경들이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온라인 세계에서 나의 자유는 침해당하고, 나는 타인의 시선에 노출된다.
3부. 이미지는 실재다
7장. 들뢰즈의 이미지 철학
핵심 질문: 이미지가 현실의 복제가 아니라 현실 자체를 구성한다면?
들뢰즈의 이미지 철학에서는 이미지를 고정된 원본에 종속된 모방물로만 이해하지 않아. 여기서 이미지는 사물의 표면에 덧붙은 외관이나 인간의 의식에 저장된 표상으로 환원되지 않아. 이미지와 운동, 물질, 변화의 관계를 통해 세계 자체를 사유하는 개념이야. 이는 플라톤적 이미지관을 근본적으로 뒤집는 관점이기도 해. 하나의 진정한 원본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기준으로 이미지를 평가하는 대신, 이미지가 어떤 변화와 관계를 만들어 내는지를 탐구할 수 있게 되니까.
『경험주의와 주체성』: 들뢰즈가 흄을 연구한 1953년 저서
주체가 경험을 구성하는가, 아니면 경험 속에서 주체가 형성되는가?
흄은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아도 변하지 않는 단일한 자아를 발견할 수 없다고 주장,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감각과 기억, 감정과 관념들
⇒ 고정된 자아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면, 수많은 경험의 집합은 어떻게 하나의 주체로 조직되는가?
들뢰즈는 주체가 먼저 있어서 경험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주체성이 형성된다고 이야기
반인간주의적 존재론: 인간을 세계의 중심이자 모든 의미와 질서를 만들어 내는 근본적인 존재로 설정하는 철학적 관점에 대한 비판
세계는 완성된 인간 주체가 의미를 부여하기를 기다리는 대상들의 집합이 아니다. 인간 역시 세계를 이루는 관계와 변화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존재다.
171 흄이 합리론의 독단을 배격하는 가운데 이미지들로부터 시작했음.
(…) 그렇기에 흄에게 인간 정신의 능력에 대한 탐구란 곧 상상력에 대한 탐구가 된다.
| 구분 | 합리론 (Rationalism) | 경험론 (Empiricism) |
|---|---|---|
| 핵심 입장 | 이성은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지식의 근거가 될 수 있다 | 지식과 관념의 형성에서 경험이 근본적인 역할을 한다 |
| 중요하게 보는 것 | 논리, 필연성, 연역적 추론 | 감각, 관찰, 경험, 귀납적 추론 |
| 대표 철학자 |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 로크, 버클리, 흄 |
| 대표적인 질문 | 경험을 의심하더라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우리가 아는 것은 경험에서 어떻게 비롯되는가? |
이후, 칸트는 합리론과 경험론의 대립을 비판적으로 재구성
| 구분 | 칸트의 초월론적 철학 | 들뢰즈의 초월론적 경험론 |
|---|---|---|
| 핵심 질문 | 경험 일반은 어떻게 가능한가? | 구체적인 현실과 경험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
| 탐구 대상 | 가능한 경험의 보편적 조건 | 실제 경험의 발생 조건 |
| 주체 | 경험을 통일하는 초월론적 통각의 역할 강조 | 주체 자체도 발생하고 구성되는 것으로 설명 |
| 주요 개념 | 감성의 형식, 범주, 통각의 통일 | 차이, 강도, 잠재성, 수동적 종합 |
| 철학적 방향 | 경험의 가능 조건 규명 | 경험과 개체의 발생 과정 설명 |
| 예시 | '우리는 어떤 인식 능력과 조건을 통해 이 작품을 경험할 수 있는가?’ | '이 구체적인 감각과 마주침은 어떻게 발생했고, 그것이 어떻게 기존의 인식을 넘어 새로운 사유를 일으키는가?’ |
171 어떤 이론적 선입견도 없이 경험을 대면할 때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이미지로서의 세계이다.
8장. 스크린에서 일어나는 일
핵심 질문: 영화의 이미지는 어떻게 우리가 세계를 보는 방식을 바꿀까?
이 장은 이미지의 실재성을 영화와 스크린의 경험을 통해 설명해. 우리는 일상에서 익숙한 관점에 따라 사물을 바라보지만, 영화는 그러한 관점을 벗어나게 할 수 있어. 카메라의 시선, 편집, 서로 다른 이미지들의 연결은 일상적으로 경험하기 어려운 세계를 보여 주지. 저자가 강조하는 지점은 이미지의 경험에 반드시 미리 주어진 문법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야. 생경한 이미지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이전에는 없던 이해의 방식이 생길 수 있어. 이미지는 기존에 알고 있는 세계를 확인시키기도 하지만, 우리가 갖고 있던 이해의 틀 자체를 바꿀 수도 있는 거지
활자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선행된 문법이라면, 이미지의 경우에는 어떤 문법도 미리 주어지는 법이 없다. 흄이 보여 주었듯 이미지의 세계는 “접속사 ‘그리고’가 동사 ‘이다’의 내성의 자리를 빼앗는 세계”, “잡동사니의 세계, 전체화가 불가능한 단편들의 세계”이다. 경험은 미리 주어진 문법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문법을 배우는 것은 정돈되지 않아 혼란한 이미지들로부터이다. 들뢰즈가 영화로부터 새로운 비전의 가능성을 찾는 것은 이처럼 스크린이 틀에 박히고 제한된 일상의 관점을 넘어, 생경하며 낯선 시선으로 보는 세계를 비추기 때문이다. 스크린에서는 언제나 일상을 벗어난 모험이, 새로운 문법을 찾는 경험주의자의 실험이 일어나고 있다.
181 모상과 달리 허상에는 더 이상 원형과의 유사성이 남아있지 않다. 다시 말해 “허상들은 또한 그 자체로 어떤 원형들이다.”
187 “영화는 더 이상 가장 오래된 환영을 이룰 완벽한 장치가 아니라 반대로 새로운 현실을 완성시킬 기관이 될 것이다.”
운동-이미지 시간-이미지 운동과 행동을 통해 시간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 행동에 종속되지 않고 시간 자체가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이미지. 사건이 발생하면 인물이 반응하고 행동하며, 그 행동이 다음 사건으로 이어진다.
지각 → 행동 → 결과라는 감각-운동적 관계가 중심이 된다.
시간은 사건의 변화와 운동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된다.사건이 반드시 행동과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과거와 현재, 기억과 현실이 복잡하게 얽힌다.
시간의 흐름과 단절, 공존 자체가 이미지의 중요한 내용이 된다.고전적인 서사영화, 액션영화, 추격 장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처럼 기억, 기다림, 시간의 지속을 탐구하는 작품.
196 카메라를 통해 일상적, 현실적인 지각에서 고정된 물질로 간주하던 것에서도 운동을 발견하게 된다. 영상의 빠른 제생에서 우리는 기존의 비전으로는 목격하지 못했던 새싹이 돋아나 들판을 메우고 꽃봉오리가 펼쳐져 개화하는 순간을 볼 수 있게 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카메라는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우리는 이제 이미지=운동인 세계의 노출에 직면하게 된다. 나타나는 것들의 집합을 이미지라고 부르기로 하자”(운동-이미지, 115) 이렇게 나타나는 운동-이미지는 고정된 중심을 가지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자연적 지각에 주어졌던 고체 상태의 개별적 실체들이 허상일 뿐임을 알려준다.
그런데 들뢰는 이러한 운동-이미지를 통해서는 오로지 시간이 간접적으로 드러날 뿐이며, 시간-이미지를 통해서만 시간 그 자체의 직접적인 모습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어째서인가? 운동-이미지가 우리의 일상적 비전의 한계를 넘어선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이 운동이 ‘정상적’이라는 점이 문제가 된다.(…)이것이 바로 시간이 운동에 종속되어있다는 말의 의미이다.
구분 공간적으로 이해되는 시간 순수한 시간 — 베르그손의 지속(durée) 개념 시간을 공간처럼 나누고 측정하는 것 시간을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으로 이해하는 것 특징 균질적·수량적·분할 가능 이질적·질적·연속적 과거와 현재 서로 구분되는 순간들 과거가 현재에 스며들며 이어짐 측정 시계로 수치화 가능 수치만으로 온전히 설명 불가능 예시 시계로 측정한 10분 즐거울 때와 지루할 때 다르게 경험되는 10분 핵심 시간을 정지된 순간들의 연속으로 파악 시간을 분리할 수 없는 지속적인 변화로 파악
이미지가 낯선 세계를 경험하게 한다는 가능성
9장. 타자를 만날 수 있을까
핵심 질문: 수많은 이미지를 볼 수 있는데도 왜 우리는 점점 비슷한 세계에 머무를까? 기존의 지각을 깨고 새로운 경험과 사유를 발생시킬 수 있는 이미지의 가능성을 설명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가능성이 왜 실현되지 않는지 묻는 파트
이 장은 이미지의 가능성과 온라인 환경의 한계를 함께 보여 줘. 온라인 공간은 누구나 접속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지만,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취향을 공유하는 공동체에 모이는 경향이 있어. 그 안에서는 구성원들이 서로의 의견을 확인해 주고, 익숙하지 않은 관점은 쉽게 배제돼. 그 결과 우리는 이미지의 세계에서 무한한 선택지를 갖게 된 것처럼 느끼면서도 실질적으로는 비슷한 이미지와 생각을 계속 소비할 수 있어. 저자는 이를 온라인 공간에서 나타나는 집단적 유아론, 디지털 부족화의 문제와 연결해 설명해.
207 공간의 관념으로 물들지 않은 순수한 시간 자체를 되찾아야한다는 베르그손의 요구에 따라 들뢰즈는 시간을 얽어매고 있었던 빗장들을 하나하나 풀어낸다. (…) 대상과 주체로부터 해방된 시간-이미지의 자리에 서서 들뢰즈는 주관으로부터 시작하는 데카르트적 의식 철학에 문제를 제기한다.
사르트르와 들뢰즈의 시간 개념 차이
| 구분 | 사르트르 | 들뢰즈 |
|---|---|---|
| 출발점 | 인간의 의식 | 인간의 의식에 종속되지 않는 실재 |
| 이미지 | 의식이 대상을 상상하는 방식 | 물질, 운동, 시간과 관련된 실재적 이미지 |
| 시간에 대한 관점 | 의식의 시간 경험과 시간성을 중요하게 다룸 | 시간이 인간의 주관적 경험에 환원되지 않음 |
| 핵심 | 의식이 세계와 어떻게 관계 맺는가? | 인간의 의식과 무관하게 시간과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고 변화하는가? |
215 시간-이미지는 우리의 일상적인 평균적 지각을 벗어나고 그것을 와해시키는 데로 나아간다. 이는 판에 박힌 것으로부터의 벗어남으로 드러난다.
일상적 지각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지각은 대상 더하기 어떤 것이 아니라, 대상 빼기 어떤 것, 즉 우리의 관심을 끌지 않는 모든 것을 빼내기”(베르그손 주의, 27)이다. 우리는 대상으로부터 실천적인 관심을 이끄는 것만을 지각한다. 이때 실천적인 관심이란 기존의 관습에 따라 자기를 보존하려는 이해 관심과 같은 뜻이다.
”우리는 시물 혹은 이미지를 그 전체로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감해진 상태로 지각한다. 즉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만을 지각한다. 혹은 우리의 경제적인 이해관계, 이데올로기적 믿음, 또는 심리적 욕구에 따라 지각에 흥미로운 것만을 지각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반적으로 판에 박힌 것들[곧 클리셰들]만을 지각하는 것이다(시간-이미지,45)”
이렇듯 일상적인 지각은 우리의 실천적인 관심에 의해 틀 지어져 있다. 그런데 이렇듯 우리가 판에 박힌 것들만을 욕망하고 판에 박힌 것들만을 지각한다면, 그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인가? 들뢰즈는 다음처럼 말한다.
”만약 우리의 감각-운동적 구조가 멎어 버리거나 균열된다면 그때에는 또 다른 종류의 이미지가 출현하게 될 것이다. 사물 그 자체가 문자 그대로 공포 혹은 아름다움의 과잉 속에서, 근본적인 혹은 정당화될 수 없는 본성 자체 속에서…… 출현하도록 하는 순수하게 시지각적-음향적 이미지 그 자체……”(시간-이미지,45)
만일 우리의 지각을 제한하고 있던 실천적 관심이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의 실천적 관심을 이끄는 유용성에 따라 지각이 제한되지 않게 됨으로서 사물의 어떤 낯선 얼굴이, 말하자면 기능이 벗겨진 존재가 드러나고 만다.
217 이제 이미지를 대면하는 일은 읽기를 그만두고 바라보는 일이다. 상식적이며 관습화된 의미 작용의 논리에 따라서 읽어 내기를 멈추고 이미지를 이미지로 바라볼 때 단 한번도 경험된 적 없는 낯선 것이 출현한다.
그 어떤 개념으로도 포획될 수 없는 전적으로 낯선 무엇을 들뢰즈는 ‘괴물’이라 칭한다. 이것은 기존의 개념을 통해 규정될 수도, 나아가 식별될 수도 없는 생경한 대상이다. 전적으로 낯선 이질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괴물은 곧 ‘타자’라 불릴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롭고 낯선 타자와 대면할 때 우리의 세계는 확장된다. 들뢰즈의 시간-이미지를 통해 우리가 다다른 이미지 탐구의 종착점은 일반적인 지각을 구성하는 클리셰를 깨뜨리고 실재의 새로운 국면과 마주하는 일이다.
온라인 세계의 타자
그런데 과연 타자를 만나는 일은 가능한 것일까?
사이버 부족화 현상 및 알고리즘 시스템은 우리가 온라인 공간에서 낯선 것과 조우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징후들이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일종의 집단적 차원의 유아론이 재현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발견되는 디지털 부족화 현상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커뮤니티 내의 소통은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형식마저도 잘 설계된 핑퐁 게임과 같다. 애석하게도 그 바깥은 미지의 영역이며 언제나 예상을 넘어선다. 현실에 이러저러한 사건들이 도대체 왜 벌어지는지 나와 이웃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그런 것쯤은 불가해한 것으로 남겨 두자. 사실 이 안온한 공간에도 이따금 이해할 수 없는 이들이 출현하지 않는가.
익숙함은 그 어떤 설득의 방식보다 더욱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우리는 익숙한 것들을 보고, 익숙한 이들과 소통하며, 익숙한 것을 소비한다. 들뢰즈가 기대를 걸었던 ‘시네마’ 이후, 콘텐츠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타자를 만날 수 있을까?
집단적 유아론 - 이미지를 통해 세계를 경험할 자유가 주어졌는데도, 왜 우리는 여전히 자기 세계에 갇혀 있는가
온라인에서 맺는 관계도 실재적이지만 그 실재적인 관계가 오히려 우리를 폐쇄적인 세계에 머물게 할 수 있음
| 8장 | 9장 | |
|---|---|---|
| 경험의 출발 | 낯선 이미지와 마주침 | 익숙한 이미지와 의견을 선택함 |
| 인식의 방식 | 경험을 통해 새로운 문법을 형성 | 기존의 문법으로 경험을 해석 |
| 타자와의 관계 | 나와 다른 세계를 경험할 가능성 | 나와 다른 세계를 무시하거나 배제 |
| 결과 | 인식의 확장 가능성 | 기존 세계관의 재확인 |
나가며. 콘텐츠 시대의 염증에 관하여
마지막 장은 다시 스마트폰과 이미지 소비의 일상으로 돌아와.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콘텐츠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그 콘텐츠에 쉽게 지루함을 느껴. 새로운 이미지를 소비하고 싶지만 이미 알고 있는 형식과 취향을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역설도 경험하지. 앞선 논의를 연결해서 보면, 이미지의 양이 많아졌다는 사실보다 그 이미지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로 떠올라.
224 아이러니하게도 콘텐츠라는 말에는 어떤 콘텐츠도 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콘텐츠는 실체 없는 유령처럼 공중을 떠돌아다니다가 이따금 다른 무엇에 들러붙어 기생하고는 그것이 생명력을 잃고 허물어질 때 떠나 다시금 표표히 거리를 맴돌 뿐이다.
226 ‘콘텐츠란 무엇인가’라고 물을 때 우리가 실제로 알고자 했던 것은 ‘그것을 왜 콘텐츠라 부르는가’하는 것이다.
우선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콘텐츠가 비즈니스 용어라는 사실이다. 콘텐츠라는 말의 상업적 함축은 표현의 용례를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콘텐츠에 흔히 따라붙는 말들, 가령 콘텐츠-시장, 콘텐츠-상품 등의 표현은 콘텐츠가 시장 경제 속에서 유통되는 일종의 상품임을 증언한다. 콘텐츠는 마치 미다스의 손처럼 맞닿은 모든 것을 자연스레 미디어 시장의 상품으로 변형시킨다. 이에 따라 우리는 어떤 위화감도 느끼지 못하고 ‘K-콘텐츠’라거나 ‘문화 콘텐츠 산업’과 같은 말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 상품화가 과연 제작의 측면에 국한되는 문제일까? 어쩌면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이상 예술작품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는 것이 아닐까? 예술 작품이라는 말은 너무도 무겁고 부담스러운 것이어서,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노동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은 그들의 여가를, 말하자면 생계를 위한 노역이 계속되는 가운데 짧디짧게 찾아오는 귀중한 시간을 또 다른 노동에 시달리기보다는 차라리 말초적인 즐거움을 소비하며 흘려보내길 택한다.
230 우리는 판에 박힌 것들에 둘러싸여 있고 이미 보았던 것들만을 보고 또 본다. 이들은 어떤 갈등도 빚지 않고 단번에 수용되며, 그래서 기억에 남지 않고 쉽게 잊힌다. 우리는 이러한 클리셰로부터 그 무엇도 읽어 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완전히 단순하고 평면적인 이미지들이다. 더군다나 사유를 위한 시간적 간격조차 마련되어있지 않다. (…) 여기에 남는 것은 사유하는 주체가 아닌 관람하는 주체이다.
238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매순간 염증을 느낀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알고리즘에 기대어 익숙한 것들을 보고 또 본다. 바로 그와 동시에 우리는 익숙한 것을 넘어 지금과 다른 것을 희구하며, 타자로 향한다. (…) 우리가 느끼는 것은 도무지 우리를 떠나지 않는 지긋지긋함의 감각이다. 이 염증이 증언하는 것은 무엇인가? 교활한 계산법이 미처 헤아리지 못한 것은 우리에게 천 개의 욕망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현대의 삶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하는 곳은 바로 이 새로운 매체적 현실에서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는 이 지긋지긋함, 어떤 염증으로부터이다.
5. 질문
1. 이미지의 어떤 구조적 특성이 타자 경험에 기여하며, 그것은 언어로 대체 불가능한가? 이미지가 타자와의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면, 그 가능성은 다른 형태의 경험과 비교했을 때 이미지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성질일까?
예를 들어 소설을 읽거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도 낯선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이미지의 가능성을 설명할 때 그것이 이미지 특유의 가능성인지, 아니면 인간의 경험과 상상력 일반이 갖는 가능성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2. 생성형 AI 이미지는 이 틀에서 어디에 놓이는가? 왜 생성형 AI 이미지는 현실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사실성을 추구할까
| 사르트르 | 이미지는 의식이 부재하는 대상을 겨냥하는 행위이고, 그림이나 사진은 그 행위를 받치는 물질적 유사물(analogon) | AI 이미지는 유사물이 될 수 있지만, 생산 쪽에는 상상하는 의식이 없다. 프롬프트는 지향의 언어화일 뿐, 이미지를 형성하는 행위는 모델이 수행한다. AI 이미지는 내가 지정하지 않은 디테일을 쏟아내서 이 조건을 깬다. |
|---|---|---|
| 들뢰즈 | 닮음 없이 효과만 내는 환영(phantasma) | AI 이미지는 phantasma가 아니라 eikon의 통계적 극단, 곧 닮음의 평균을 최적화한 복제다. 원본이 없다는 점은 시뮬라크르와 같지만, 차이를 생산하지 않고 닮음에 복무한다는 점에서 들뢰즈의 시뮬라크르와 반대 |
틀 바깥에서 더 잘 설명하는 이론들
① 보드리야르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의 이미지 4단계 중 마지막, 곧 어떤 실재와도 관계없는 순수한 시뮬라크르. 원본 없는 복제가 원본의 효과(사실성)를 내는 것이 하이퍼리얼.
② 퍼스 기호학과 바르트: 지표 없는 도상
사진 회화 AI 이미지 지시 대상과의 관계 물리적 인과(지표) 해석된 유사성(도상) 통계적 유사성(도상) 증거 기능 있음 (ça-a-été) 약함 없음 외관 사진적 회화적 사진의 외관을 차용 AI 이미지는 지표성이 없는 도상인데 지표의 외관을 입고 있다. 이전 답에서 말한 "신뢰 코드의 차용"이 바로 이것. 사진적 사실성은 원본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사진이 100여 년간 쌓은 증거 코드가 시각 문화에서 가장 강한 통화이기 때문에 쓰인다. 이 질문에는 W.J. 미첼의 『재구성된 눈』(탈사진 시대)이 선행 논의이다.
③ 플루서: 가장 구조적인 설명
플루서에게 기술 이미지는 세계의 재현이 아니라 장치 프로그램이 개념을 이미지로 번역한 출력이다. 프롬프트로 이미지를 만드는 구조는 이 정의의 문자적 실현이다. 텍스트(개념)가 입력되고 이미지가 출력된다. AI 이미지를 새로운 이미지 종류로 보기보다 기술 이미지의 논리가 극한까지 간 것으로 보는 편이 이론적으로 깔끔하다. 플루서가 경고한 것도 바로 사용자가 프로그램의 가능성 안에서만 움직이는 문제이다.
④ 히토 슈타이얼, 「Mean Images」(2023)
가장 직접적인 현대 이론입니다. AI 이미지는 세계의 이미지가 아니라 데이터셋의 평균 이미지이고, 따라서 데이터에 내재한 사회적 편향과 시각적 관습의 이미지이다. 이 논의가 이 책에 가하는 타격은 크다. 책 9장의 "비슷한 이미지의 반복 소비"가 소비 단계를 넘어 생산 단계에서 구조화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⑤ 크로퍼드와 패글렌, 「Excavating AI」
학습 데이터의 분류 체계가 정치적이라는 점을 폭로한 글이다.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범주화 위에서 생성된다는 논점이고, 브랜드 작업에서 이미지 생성 도구를 쓸 때의 윤리 문제와도 이어진다.
생성형 AI가 아직 대중에게 비교적 새로운 이미지 생산 기술이라는 점에서, 사람들은 기존에 익숙한 사진의 형식을 통해 그 결과물을 이해하고 평가하려는 것 아닐까.
스큐어모피즘
Skeuomorphism: AI needs you. Great once, nostalgic now, but the… | by Juan Williman | Bootcamp | Medium
디지털 메모장을 실제 종이 메모장처럼 디자인
초기의 디지털 UI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물리적 사물의 형태를 적극적으로 모방했어.
- 메모 앱은 종이와 가죽 질감을 사용하고
- 전자책은 나무 책장에 책을 꽂아 놓은 것처럼 표현하고
- 휴지통은 실제 쓰레기통처럼 만들었지.
사람들이 기존에 익숙한 물리적 사물의 사용법을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야. 실제로 Nielsen Norman Group에서도 스큐어모피즘이 기존의 정신적 모델을 활용해 새로운 인터페이스의 학습 부담을 낮춘다고 설명해.
재매개 개념
제이 데이비드 볼터와 리처드 그루신의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1999)는 새로운 매체가 기존 매체를 단순히 대체하기보다, 기존 매체의 형식을 차용하고 재구성하면서 발전한다고 설명해.
예를 들어 사진은 회화의 구도와 원근법을 활용했고, 영화는 사진과 연극의 표현 방식을 차용했어.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고 해서 곧바로 새로운 시각 언어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새로운 기술은 기존 매체의 표현 방식을 재현하면서 자신의 사용 가능성을 증명할 수 있어.
그리고 볼터와 그루신은 새로운 매체가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마치 현실을 직접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주려는 경향을 '비매개적 직접성(Immediacy)'으로 설명해.
3.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원본(브랜드의 본질)을 재현하는 복제인가, 아니면 브랜드라는 실재를 구성하는 이미지인가? 후자라면 '브랜드 본질 추출'이라는 전략 문서의 전제 자체가 플라톤적이게됨
브랜드 본질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전략 문서라는 이미지/텍스트를 통해 사후적으로 구성되고, 이후 그것이 원본처럼 기능한다는 것입니다. 들뢰즈식 용어로 시뮬라크르가 원본의 자리를 차지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보면 "본질 추출"은 플라톤적 수사이면서 동시에 구성적 실천입니다.
4. 레퍼런스와 무드보드 문화는 9장의 집단적 유아론을 디자인 업계 내부에서 재생산하고 있지 않은가?
5.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낯선 세계'를 제공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시장 인지도와 낯섦은 충돌하는데, 이 충돌을 어디서 돌파할 것인가?
최적의 차별성(optimal distinctiveness)
- 출처 1: 브루어(Brewer, 1991, 사회심리학). 사람은 소속 욕구(같아지려는 욕구)와 독특성 욕구(달라지려는 욕구)를 동시에 가지며, 그 균형점에서 만족이 극대화된다는 이론입니다.
- 출처 2: 경영학적 확장. 디파우스(Deephouse, 1999), 나비스와 글린(Navis & Glynn, 2011, legitimate distinctiveness), 자오·피셔·라운즈베리·밀러(Zhao et al., 2017, SMJ 서베이)가 있습니다. 조직이 제도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필요한 유사성과 경쟁 우위를 위한 차별성의 균형이 연구 대상입니다.
- 디자인 쪽 평행 연구: 헤커트 외(Hekkert et al., 2003)의 MAYA(Most Advanced Yet Acceptable, 로이비 원칙의 실증)에서 선호는 전형성과 새로움의 결합이 가장 높을 때 나옵니다. 베를라인(Berlyne)의 역U자 곡선도 같은 계열입니다. 우찌(Uzzi et al., 2013, Science)는 학술 논문에서 관습적 조합이 대부분이고 소수의 비전형적 조합이 섞인 경우에 영향력이 높다는 것을 보였습니다.
- 판단: 실증 근거는 있지만 "최적점이 어디인가"는 맥락 의존적이라 공식화되지 않습니다. 이 이론은 "균형을 잡아라"는 처방이 아니라 "차별성은 정당성과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진단으로 쓰셔야 합니다.
영역별 차별화 동기 - 버거& 히스(Berger & Heath, 2007)
① 지각된 위험(perceived risk)
캠벨과 굿스타인(Campbell & Goodstein, 2001)은 부조화한 제품에 대한 평가가 위험 지각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였습니다. 틀려도 비용이 적은 영역(음악, 패션, 잡화, 책)에서는 낯섦이 수용되고, 오류의 비용이 큰 영역(금융, 의료, 안전)에서는 거부됩니다. 브랜드가 소비자의 위험을 낮추는 장치(환불, 체험, 보증, 신뢰 인증)를 갖추는 만큼 낯섦의 허용 폭이 넓어집니다.
② 전문성
베를라인 계열의 연구는 해당 영역의 전문성이 높을수록 복잡하고 새로운 자극을 선호한다고 봅니다. 초보자는 전형적인 것을 안전하다고 느끼고, 전문가는 전형성에 질립니다. 해당 카테고리를 오래, 깊이 소비한 사람이 낯섦의 1차 수용자라는 뜻입니다. 이 점은 직관과 어긋납니다. 신규 유입 고객이 아니라 카테고리 헤비 유저가 낯선 것에 열려 있습니다.
③ 신호 가치(signaling value)
벨레차 외(Bellezza et al., 2014, 「The Red Sneakers Effect」)는 규범에서 벗어난 소비를, 그 맥락에서 벗어나도 되는 지위의 신호로 읽는 조건을 보였습니다. 낯선 소비가 사회적 자본의 표시가 되는 곳에서는 낯섦이 오히려 매력이 됩니다. 반대로 그 신호를 해석해 줄 청중이 없으면 낯섦은 그냥 이상함입니다. 낯섦이 가치가 되려면 해석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④ 문화 자본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논의가 여기 맞습니다. 낯선 형식을 읽어 낼 코드를 가진 집단이 있고, 그 코드를 습득하는 시간과 자원은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습니다. 앞서 8장 비판에서 말씀드린 지점입니다. 이는 낯섦 전략이 구조적으로 어떤 계층을 선택하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이 선택이 윤리적으로 문제인지는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지만, 모르고 선택하는 것과 알고 선택하는 것은 다릅니다.
⑤ 확산 단계
로저스(Rogers)의 혁신 확산 이론과 무어(Moore)의 캐즘 이론입니다. 혁신가와 얼리어답터가 낯섦을 먼저 수용하고, 다수가 따라오기 전에 간극이 있습니다. 문제는 얼리어답터가 수용한 형식이 다수에게 번역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시장 인지도와 낯섦의 충돌이 실제로 나타나는 지점입니다.
⑥ 성향 변수
경험에 대한 개방성(Big Five), 모호성 관용(Budner, 1962), 독특성 욕구(Tian, Bearden, Hunter, 2001) 척도가 있습니다. 다만 이 변수들은 ①~⑤에 비해 설명력이 약하고 실무에서 측정하기 어렵습니다. 성향을 기준으로 타깃을 정하는 것은 비효율적입니다. 상황과 구조 변수로 타깃을 정의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브랜드는 어떻게 그 소비자를 선택하는가
선택은 타깃 정의가 아니라 자기선택(self-selection)의 설계로 이루어집니다. 브랜드가 사람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브랜드를 고르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맞지 않는 사람이 이탈하도록 설계합니다.
- 문화적 긴장 위에 서기: 홀트(Holt)의 문화 브랜딩 모델에서 문화적 아이콘이 된 브랜드는 인구 세그먼트가 아니라 사회가 겪는 이념적 긴장(예: 성과주의와 번아웃의 충돌)에 응답합니다. 그 긴장을 체감하는 사람이 스스로 모입니다. 정태영 구조의 "왜 존재해야 하는가"가 이 지점에 해당합니다.
- 비용이 드는 신호(costly signaling): 쉽게 읽히지 않는 것, 설명하지 않는 것, 접근에 노력이 필요한 것이 필터가 됩니다. 이 필터를 통과한 사람은 브랜드와 정체성을 공유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층위별 설계: 앞서 말한 대로 첫 접점은 범주 신호로 읽히고, 깊이 들어갈수록 낯선 세계관이 열리는 구조입니다. 입구는 넓고 출구가 아니라 깊이가 선택을 만듭니다.
- 해석 공동체와 매개자: 큐레이터, 비평가, 커뮤니티, 얼리어답터가 낯선 형식에 해석을 제공합니다. 브랜드는 소비자 이전에 이 **문화적 매개자(cultural intermediaries)**를 먼저 확보해야 합니다. 이들이 정당성을 부여하는 주체이기 때문입니다(앞서 말한 주커만의 정당성 문제에 대한 답입니다).
- 채널과 맥락 선택: 어떤 매체와 어떤 공간에서 만나게 하는지가 낯섦의 허용 폭을 바꿉니다. 같은 이미지도 갤러리와 편의점 진열대에서 다르게 읽힙니다.